내가 살고 있는 6가지 세계

원문 주소
	1998.9.20



나는 상호 주소를 확인 못하는 6가지 세계를 갖고 있다. 화이트홀이나 블랙홀처럼 짐작 없는 시간과 공간속에 그 세계들은 상주한다. 그러나 나는 하나의 세계 속에 있어도 각기 다른 세계를 호출하는 법을 알지 못한다. 외부에 내가 있는 세계를 알리는 방법을 알지 못하기에 현실의 나를 보는 나의 눈은 불안하다. 그래도 그 세계속의 내 가슴은 처음처럼 아름답다. 아름답다는 것을 나는 그 세계의 입을 통해 발음한다. 세계가 없는 자들, 자신의 모든 걸 한 눈에 통제할 수 있는 자들은 여섯가지 생명의 모가지가 잘린 자들이다. 그들이 한없이 가엾고도 부러웁다.



6가지 세계속에서 나는 각기 다른 모습으로 산다. 아니 내가 가면 항상 그 세계 속엔 지금과는 다른 내가 살아있다. 그러나 그 세계에 진입하면 나는 이미 그 세계의 나이다. 그리고 내가 현실로 돌아올 때 그 세계의 나는 함께 돌아오지 못한다. 그 세계 속에 있는 나 때문에 돌아와 내가 시선을 보내는 현실은 메아리 하나 없이 허전하다. 가슴 밑바닥을 쓸며, “쓸쓸해, 난 너무 쓸쓸해” 남김없이 발음해 보아도 너무 익숙하기에 이젠 표정으로 번역되지 않는다.



주소를 알 수 없는 그 세계들이 분명히 내 속에 있다, 때로 

그 안의 측량되지 않는 부피의 미명이 출렁임을 느낀다. 돌아보면 순간, 나의 현실은 심해에 뜬 뗏목처럼 가벼이 떠오르고... 

빠져본 사람은 안다. 아무리 정교하고 튼튼한 뗏목이라도, 현실은 카스테라의 밑바닥에 붙어있는 흰 종이보다, 결국 더 얄팍하고 허약할 뿐이다.



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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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 산문시는 과거 정신분석, 최면,

그리고 최근 공부하고 있는 양자론에까지 

많은 깨달음과 비유적인 연관성을 드러낸다.



허겁지겁 쏟아내던 진정성과 진실성의 폭들이, 생경한 양자론적 세계관 안에서도 설명될 수 있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.



말하자면, 양자론은 그냥 물리 이론이 아니다



전 생을 눈을 뜨고 지낸 자아게게 그것은, 투명한 세상속의 아름답고 쓸쓸한 실존일 뿐이다.


	
	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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